본문 바로가기

​독서의 찰나 [블루닷 서재 : Book]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가장 차가운 곳에서 피어난 삶의 온기" 강봉희 줄거리 요약 및 독서감상문

728x90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제목: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작가: 강봉희

오디언 도서관
죽음이란 삶의 빛을 꺼뜨리는 어둠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하루의 가치를 가장 눈부시게 증명하는 투명한 거울이다.

[마지막 뒷모습을 닦아내는 손길]

해 질 무렵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 한 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한때는 푸르른 생명력으로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맞이했을 잎사귀였다.

그러나 때가 이르자 아무런 원망도 없이 부드럽게 지상으로 내려앉아 대지의 품에 안긴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저 낙엽의 여정과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 저마다의 빛깔로 치열하게 살아가다, 결국에는 예외 없이 고요한 소멸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디언 도서관의 나지막한 음성을 통해 강봉희 작가의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를 만난 것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인상적인 날이었다.

이 책은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타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온 한 장례지도사의 절절한 기록이다.

저자는 4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았던 경험이 있다.

기적적으로 삶으로 돌아온 그는 깨달았다. 죽음을 외면하는 삶은 결코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그를 타인의 마지막을 돌보는 숭고한 길로 인도했다.

그가 마주한 죽음의 풍경은 결코 영화처럼 아름답거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특히 2020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대유행 시기, 모두가 감염의 두려움에 몸을 사릴 때 저자는 가장 먼저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손대려 하지 않던 고인들의 차가운 육신을 거두고, 그들의 무거워진 영혼을 달래주었다.

누군가는 해야 했지만 아무나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저자의 고백은,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듣는 이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고독의 얼룩]


책 속에서 저자가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 중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대목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700명이 넘는 고독사 사망자들과 기초수급자들의 장례를 치러온 기록이다.

아무런 보상도, 알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저자는 홀로 떠난 이들의 마지막 가족이 되어주었다.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서늘한 공기와 방치된 유품들,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다는 유일한 흔적인 차가운 시신 앞에서 저자는 온 마음을 다해 염습을 하고 장례를 집도했다.

이러한 고독사의 풍경은 단순히 책 속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가장 아픈 단면을 그대로 비춘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불빛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찬란하게 빛나지만, 정작 그 두꺼운 벽 뒤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초연결 사회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된 고립의 시대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의 무관심은, 어쩌면 한 인간을 사회적으로 먼저 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소에 홀로 앉아 고인의 넋을 기리는 저자의 모습은,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형태의 자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차가워진 육신을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내며, 고인이 이 세상에서 받았을 상처와 외로움까지도 함께 닦아내고자 했다.

그 손길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엄성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려는 거룩한 의식이었다.

[우주 속의 푸른 점, 그리고 인연]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지구는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바라보면 한낱 작은 '푸른 점(Pale Blue Dot)'에 불과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백 년 안팎의 삶은 찰나의 불꽃놀이처럼 짧고 덧없다.

장례식장과 화장장, 그리고 납골당을 오가는 저자의 일상은 매일같이 그 덧없음의 극치를 목격하는 과정이다.

한때는 뜨겁게 사랑하고, 질투하고, 성공을 향해 달렸던 육신들이 한 줌의 하얀 가루로 변해 상자 속에 담기는 모습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허무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있기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를 웅변한다.

아침에 눈을 떠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온기,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의 향기,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사소한 안부 인사 구절까지도 모두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배경이 있기에 삶이라는 빛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가 맺는 수많은 인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넓은 우주에서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확률의 축복이다.

저자가 연고 없는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흘린 눈물은, 우리에게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한 번 더 따뜻하게 잡아주라고 속삭인다.

원망과 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기에 우리에게 허락된 계절은 그리 길지 않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의 마지막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결코 지금 이 순간 소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디언 도서관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이들을 위한 기도]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에 탑승한 승객이다.

그 열차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내리지 않을 것처럼 짐을 쌓고 땅을 넓히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손에 쥐었던 권력도, 통장에 찍힌 숫자도 결국엔 차가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오직 내가 타인에게 주었던 사랑의 기억과, 나를 기억해 주는 이들의 마음속에 남겨진 온기뿐이다.

강봉희 장례지도사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며 나는 비로소 보이지 않던 세상의 틈새를 바라보게 되었다.

모두가 삶의 화려한 무대 위만을 바라볼 때,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청소를 하고 조명을 끄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기에 우리의 퇴장 또한 존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가 고인들의 한 많은 넋을 기리며 올린 기도는, 살아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간절한 위로이자 성찰의 권유였다.

죽음을 돌보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아프도록 아름다웠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백과사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 가장 뜨거운 인생의 지침서이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인간관계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힐 때 이 책의 음성을 다시금 귀에 담고 싶다.

그러면 엉켰던 마음의 실타래가 스르륵 풀리며,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과분한 선물인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오디언 도서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