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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찰나 [블루닷 서재 : Book]

코끼리를 쏘다 - 조지 오웰 줄거리 요약 및 독서감상문 :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대하여 George Or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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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우리들의 자화상

제목: 코끼리를 쏘다
작가: 조지 오웰

오디언 도서관
타인의 눈총을 견디지 못해 당긴 방아쇠는 결국 나 자신의 영혼을 관통하는 화살로 돌아온다.

[어떤 여름날의 그림자,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매일 아침 마주하는 일상의 풍경은 지독하리만치 평온하다. 베란다 창가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맑은 햇살, 콘크리트 틈새에 이름 없이 피어난 작은 들꽃, 그리고 골목 모퉁이 카페에서 깨어나는 은은한 커피 향기까지. 우리는 그 잔잔한 풍경 속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문득 만원 버스 안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혹은 SNS에 올린 일상 글에 달린 하트 개수를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깨닫게 된다. 나의 자유라는 영토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삶의 무대 위를 연기하곤 한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직원의 가면, 가정에서 책임을 다하는 다정한 구성원의 틀. 그 정형화된 모양새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정작 영혼이 외치는 소리는 외면하기 일쑤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를 오디오북의 잔잔한 음성으로 받아들인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이 거대한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다.

대영제국의 경찰로 미얀마에서 근무하던 젊은 날의 오웰은 식민지 민중들의 증오와 조롱 속에 서 있었다.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모순의 시스템 속에서 그가 느낀 환멸은 결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자본주의나 조직 문화, 혹은 주변의 평판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매일매일 나만의 미얀마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던 제국의 집행자]

어느 날 마을에 날뛰는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집을 부수고 사람을 해친 코끼리를 조사하기 위해 오웰은 낡은 소총을 들고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마주한 코끼리는 이미 광기를 가라앉히고 논밭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무해한 존재였다. 오웰의 내면은 명백하게 속삭였다. 저 코끼리를 쏘아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잔인한 살생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는 수천 명의 현지 주민들이 모여들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백인 지배자인 오웰은 깨닫는다. 자신은 거대한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아니라, 뒤에 선 군중들의 기대와 압박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가련한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원하는 단호함을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면, 자신은 단숨에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양심과 판단을 배신한 채 코끼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쓰러져가는 코끼리의 거대한 신음 소리는 제국의 종말을 고하는 비명이자, 타인의 시선에 굴복해 스스로의 영혼을 죽여버린 한 인간의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오웰은 고백한다. 자신이 코끼리를 쏜 유일한 이유는 오직 군중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이 솔직한 고백은 독자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놓는다.

[우리 삶의 코끼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이 장면을 곱씹으며 나는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당겨왔던 수많은 무형의 방아쇠들을 떠올렸다. 내 마음속에서는 분명 '아니요'라고 외치고 있었음에도, 주변 사람들의 실망 어린 눈빛이 두려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이니까, 사회가 정의한 성공의 기준이니까, 그 기준에서 벗어나 낙오자처럼 보이기 싫어서 내면의 열정을 짓눌렀던 날들이 참 많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남들의 시선'은 오웰의 등 뒤에 서 있던 수천 명의 군중과 다르지 않다. 마치 옷에 맞지 않는 몸을 억지로 구겨 넣듯,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재단하는 삶. 그것은 결국 내 삶의 주권을 타인에게 양도한 채 원치 않는 코끼리를 사냥하러 다니는 비극적인 연극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의 지배자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주변 평판과 시선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사회적 현상으로 시선을 확장해 보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다수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리는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대판 '코끼리 쏘기'를 반복하고 있는가. 직장 조직 내에서의 부조리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 군중심리에 휩쓸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것 역시 무리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는 나약함의 소치다. 오웰의 성찰은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군중심리를 정조준한다.

[타인의 거울을 깨뜨리고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용기]


오웰은 미얀마에서의 경찰 근무를 마치고 결국 사직서를 던졌다. 그리고 파리와 런던의 부랑자 생활을 자처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지배 계급의 안락한 미래를 과감히 포기하고, 소외된 자들의 곁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가 다름 아닌 '정치적 목적', 즉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겠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결코 맹목적으로 진영 논리에 동조하지 않았다. 언제나 뼈저린 자기반성과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동물 농장>과 <1984> 같은 위대한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웰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감동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평판과 계급의 감옥을 과감히 깨뜨리고, 오직 자신의 양심이 가리키는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우리가 이 메마른 세상 속에서 진정한 인연을 맺고 따뜻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등 뒤의 군중들을 퇴장시켜야 한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면의 순수한 가치를 사냥하는 잔인한 짓을 멈추어야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 대신, 내 마음이 속삭이는 오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내 삶의 단독자이자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내면의 숲을 되찾는 감상문을 마무리하며]

초록이 서서히 짙어지는 이 계절,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며 다짐해 본다. 이제는 내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세상의 소음에 귀를 닫고, 내 마음속 깊은 숲에서 평화롭게 거닐고 있는 나만의 코끼리를 온전히 지켜내겠노라고. 누군가에게 조금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내 양심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말이다.

조지 오웰이 평생을 바쳐 펜으로 증명해 보였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대는, 결국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구체적인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이제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원치 않는 방아쇠를 쥐고 고뇌하던 오웰의 서글픈 눈빛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내가 온전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단단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오디언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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