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지낸 또 다른 지구의 주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 동물권력
작가: 남종영

새벽을 깨우는 작은 날갯짓의 기억
밤새 가동되던 공장의 거친 기계음이 잦아들고, 이른 아침의 푸르스름한 공기가 도시를 감싸 안을 때였다. 밤샘 작업의 피로를 머금은 채 퇴근길에 나서는데, 버스 정류장 옆 작은 가로수 밑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여 보니 깃털이 정돈되지 않은 참새 한 마리가 시멘트 보도블록 틈새를 바쁘게 쪼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콘크리트 숲 한복판, 그 삭막한 틈바구니에서 작은 생명은 자신만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내게 도시는 오직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도로와 빌딩, 자동차와 신호등은 모두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계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보도블록 틈새의 참새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 작은 존재 역시 도시라는 생태계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당당한 거주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지구라는 무대의 유일한 주인공이 인간인 것처럼 행동해 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디언 도서관을 통해 남종영 작가의 『동물권력』을 듣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사소하고도 기묘한 만남 직후였다.
성우의 차분한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문장들은, 내가 방금 마주쳤던 참새의 날갯짓처럼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동물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감상적인 호소문이 아니었다. 인간 중심의 역사관이라는 단단한 벽에 커다란 균열을 내는,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인문학적 선언이었다.
무대 뒤의 조연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기록이었다. 왕조의 흥망성쇠, 전쟁의 승패, 기술의 발전 속에서 동물은 그저 배경을 장식하는 소품이거나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했다.
때로는 자연환경의 아주 작은 구성 요소로 여겨졌고, 때로는 인간의 잔인함을 증명하는 고통받는 피해자로만 소환되곤 했다. 하지만 작가는 거꾸로 질문을 던진다. 동물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책 속에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바이러스 폭탄을 몸에 지닌 채 탈옥을 감행하여 인간 사회의 방역 체계를 뒤흔든 원숭이 앨피, 전쟁터의 참화 속에서 군인 194명의 목숨을 구하고 훈장을 받은 통신병 비둘기 세르 아미, 인간 사냥꾼의 총구 앞에서도 나름의 품위를 지켰던 사자 세실, 그리고 죽음을 예견하고 인간의 임종을 지켰던 고양이 오스카까지.
그들은 단순히 본능에만 이끌려 움직이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저마다의 의식과 성격, 그리고 정교한 판단력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닥친 역사적 상황에 치열하게 저항하거나 협력했던 주체적인 행위자들이었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연극 무대에서 언제나 주인공의 뒤편에 숨어 조명조차 받지 못했던 단역 배우들이, 사실은 극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숨은 주역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과도 같았다.
동물은 인간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결과물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인간의 정치에 개입하고 저항하며 지구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온 역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존재였다. 책의 제목이 왜 '동물권력'인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지구라는 거대한 그물망 위의 인연들
이 책을 들으며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가는 일상과 이 사회로 향했다. 문득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뉴스가 떠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열병이 발생했을 때, 인간은 너무나 쉽게 수백만 마리의 생명을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땅에 묻는다.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는 인간의 복잡한 숫자들 속에서, 생명 각자가 가졌을 삶의 무게는 완벽하게 지워진다. 우리는 동물을 철저하게 이분법적인 구도 안에서만 바라본다. 가축으로 분류되어 식탁 위에 오르는 고기이거나,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려 동물이거나.
하지만 지구는 거대한 하나의 그물망과 같다. 숲 속의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고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물망의 한쪽 구석이 찢어지면 결국 그물 전체가 망가지는 것처럼, 동물의 권리를 짓밟고 일궈낸 인간만의 풍요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최근 전 세계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와 원인 모를 감염병의 창궐은, 어쩌면 인간 중심의 오만에 대해 지구가 던지는 엄중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인간 대 동물의 구도를 벗어나 지구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결코 거창한 연대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을 감각하는 섬세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자의 시선으로 초원을 바라보고, 고래의 귀로 깊은 바다의 울림을 듣고, 침팬지의 마음으로 숲의 파괴를 염려하는 일. 타자의 눈을 빌려 나를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가 판 파멸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우주의 푸른 점 위에서 함께 걷는 길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다. 그 끝없는 우주의 시공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고작 아주 작은 푸른 점 하나에 불과하다. 이 외롭고도 아름다운 행성에서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수많은 생명과의 경이로운 인연이 있기에, 인간의 삶 또한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니 오디오북의 마지막 재생 인덱스가 멈추었을 때, 차가운 화면 위로 내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속에 깊은 울림이 퍼졌다.
이제는 동물을 거대한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해야 할 때다. 그들이 시시때때로 보낸 저항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지 지구를 구성하는 동등한 동반자로서 곁을 내어주어야 한다.
다시 돌아온 퇴근길, 아침에 보았던 그 참새는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하지만 참새가 머물렀던 그 작은 보도블록 틈새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풍경을 담는 내 안의 세계가 바뀐 것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모든 곳에는 이름 없는 동물들의 치열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
그들의 걸음걸이 하나, 날갯짓 한 번에 담긴 무거운 의미를 기억하는 것. 그리하여 인간 중심의 거만한 걸음을 멈추고 생명의 온기를 지닌 모든 존재와 다정하게 발을 맞춰 걷는 것. 그것이 오디오북 『동물권력』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가장 다정하고도 준엄한 숙제다.
